휘어진 진열대


전시 설명

《휘어진 진열대》는 동시대의 불연속적이고 분절된 우리를 대면할 기회를 마련해준다. 미미하고 작아 눈에 밟히지 않던 풍경의 내면을 주시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 지향적인 동시대에서 소외된 것들을 짚어낸다. 더 나은, 더 편한 삶만을 위해 나아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놓칠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의 재구성을 통해 동시대 구성원들의 시선과 태도를 제안한다.

《휘어진 진열대》는 박물관의 역할인 수집·보존·진열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된다. 시간이 쌓일수록 그 흐름을 따라 수집과 진열을 성실히 행하는 것 역시 박물관의 중요한 임무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들은 보존이 잘 이뤄지지 못하여 놓쳐버린 것들의 복원을 시도한다.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던 것’과 같이 작은 소망과 후회의 감정을 되짚어 내려가 미시적이고 순간적인 물질·장면·감정을 수집한다. 수집된 것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복원되어 진열된다. 이들은 동시대의 복잡한 방향성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되, 그 흐름 속에서 놓친 것들의 행로를 좇는다. 날카롭고 불친절한 형태가 아닌 곡선을 그리며 휘어진 진열대에 아스라이 놓인 대상과의 대면을 통해 진열대 밖으로의 확장을 기대한다. 갤러리와 박물관 그 사이쯤에 위치한 이 전시에서 느리고 낮은 곳에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는 것들의 희미한 빛을 마주 볼 수 있길 바란다.

고우현은 자연물인 돌과 이를 인공적으로 본뜬 돌을 병치시켜 가치의 보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원본과 이를 본뜬 것의 감각적 비교를 통해 원본의 가치와 보존에 대한 진지한 시선을 공유한다. 돌로 정성스레 탑을 쌓아 소망을 전하는 ‘돌탑 쌓기’라는 원시적 종교 행위―현재까지도 그 의미를 잃지 않고 있는―를 통해 개별적 소망과 같이 실재하지 않는 가치의 연대기를 우리 앞에 복원시킨다.

김서영은 대상과 틀, 그리고 둘의 관계에 대한 실험을 시각화한다. 틀의 위치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틀의 유/무를 기준으로 당연시 여겨져온 보존과 방치에 대한 고착관념의 해체를 시도한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다양한 방향으로의 대상의 확장과 요소들의 (부)조화로 인한 다채로운 가능성의 발견을 도모한다.

오주안은 순간적인 장면의 포착을 통해 의미를 전한다. 여리고 사라지기 쉬운 성질의 존재들―꽃, 눈사람, 구름과 같은―에게 정확한 장면을 부여해 줌으로써 무력하게 ‘보이는’ 것들이 찰나의 순간에 발산하는 존재감을 복원·보존 해낸다. 이를 통해 우리가 하나의 존재가 지닌 두꺼운 서사를 인지하고 알아가는 것을 돕는다.

최진아는 요가 자세를 취하는 인물의 포착으로써 개인적 유지의 태도를 보여준다. 방치된 근육을 사용하여 신체의 조화와 유지를 꾀하듯,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각자의 방식에 대한 고민을 제안한다. 이러한 제안은 <다운 독>과 <사실 미끄러지는 중>의 비교를 통해 한끗차이로 어긋나길 반복하는 보존과 방치의 기준에 대한 질문까지 확장된다.

글: 김채민.


전시 기간

2020.04.30-2020.05.06


참여 작가

고우현, 김서영, 김채민, 오주안, 최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