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현동 토끼풀 살생사건
전시설명
내용: 어느 날 서대문경찰서로 대현동 럭키아파트에 살고 있는 302호 산토끼씨(토끼과)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온다. 대현동 토끼풀밭이 잔인하게 훼손된 상태로 발견된 것. 서대문경찰서 강력1팀 김다정 형사는 탐문수색에 들어간다. 인근주민동물 몇몇이 용의선상에 올랐고 결국 진범인 ‘인간’이 잡힌다.
기획의도: 자연 위에 세워진 인류의 문명,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자연을 착취하며 살아가고 있다. ‘대현동 토끼풀밭 살생 사건’의 토끼풀은 평화를 상징한다. 대현동 APM 공원 한 켠에 심어진 평화의 풀밭은 무참히 짓밟힌 채로 발견된다. 용의자 김또지 (개과), 조재비 (족제비과), John, B (비둘기과). 인간 경찰은 이들을 탐문수사하지만 범인은 용의 선상에 오른 동물 친구들이 아니라, 한 쌍의 인간 커플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태연자약하게 무슨 문제라도 있냐며 어리둥절해 한다. 부모님이 (또는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토끼풀 반지와 화관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셨다며, 애인의 호감을 얻으려고 풀밭의 토끼풀을 뜯어 화관과 반지를 만든 것이었다. 우리는 이들처럼 어떠한 의구심 없이 문명의 편리함을 누려왔다. 그리고 계속해서 전승해왔다. ‘평화’를 뜯어 헤쳐놓고, 말간 얼굴로 방싯 웃는 범인. 알면서도 모른 척했든, 정말로 몰랐든. 범인은 인간이다. 우리가 잠시 쉬어가는 공원. 도심 속에 자연을 ‘보기 좋게’ 조성한 공원이라는 것 자체도 어쩌면 기만적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원래의 형태를 허물고 밀어, 그 위에 ‘찬란한’ 문명을 세운 것이니까. 자연을 짓밟으면서, 동시에 그와 함께 더불어 살려는 인간의 이중적인 면모다. 대부분의 공원 이용객은 자연을 모사한 공간을 보고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사용할 것이다. 마치 토끼풀 반지, 토끼풀 화관 만드는 법이 아래로, 아래로 전승되는 것처럼. 그래, 태어난 이상 우린 누군가를 딛고 일어서며 살아간다. 그것이 자연이든, 우리와 같은 사람이든. 누군가는 이 작업을 한다고, 그래서 뭐 속세와 절연할 것이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 설치 재료 역시 착취의 결과물 아니냐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을 하는 이유는, 패배주의적, 회의주의적 온점으로 생각을 마치기 싫어서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인지하고 의식을 갖고 살아가고자 한다. 작업 과정 속에서 훈련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런 우리를 보고 누군가는 감화될 것이라고 믿는다. 동시에, 비겁한 사람들의 최소한의 양심이자 변명이기도 하다.
전시기간
7월 31일-8월 6일
기획
가삼로지을, 아티스트 콜렉티브 ‘은호다슬출현’
참여작가
서대문경찰서 강력 1팀 김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