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체도무송


전시 설명

도무송. 세 음절 내내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있어야 하는 좀 귀여운 발음의 이 단어는 모양대로 떼서 붙이는 스티커를 말합니다.

아시다시피 도무송은 다이어리 꾸미기를 위한 필수템이죠. 그리고 미술러 채희씨는 사실 프로 다꾸러이기도 합니다. 사실 미술러 채희씨와 다꾸러 채희씨를 굳이 구분해야 하나 싶어요. 원하는 도무송 스티커를 직접 주문 제작할 정도로 본격적인 다꾸러 채희씨가, 그걸로도 어쩐지 만족이 안 돼서 찾는 게 결국 캔버스와 물감이라면요. ‘액체’와 ‘도무송’이란 두 단어의 조합에서 형용모순을 보긴 쉽겠지만, 도무송은 차라리 액체인 편이 좋다는 건 채희씨의 다꾸에서 필연입니다.

모든 다꾸러에겐 저마다의 다꾸 스타일과 습관이 있습니다. 다이어리에 새겨지는 내용도, 다꾸라는 행위가 그 과정과 결과로 선사하는 감정의 성격도 같을 순 없겠죠. 채희씨의 회화를 다꾸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보면, 이 회화/다꾸는 몇 줄의 이야기-기억에 꾸밈 요소가 더해진 가산적 다꾸가 아니라, 잊혀지는 사실로부터 떨어져 나온, 이야기일 수 없는 순간성의 이미지로 채워진 감산적 다꾸입니다. 이야기는 그냥 명사적인 이미지들의 연쇄로 대체되고, 손글씨의 신체성은 붓놀림의 신체성으로 변환된 다꾸 말이죠.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해둬야 할 게 있습니다. 채희씨가 정말로 기록하고 싶은 건 이미지 객체 자체보다도 그게 기억에서 떨어져 나올 때의 신체적 실감에 훨씬 가깝다는 것, 그래서 붓 끝에 맺히는 실감은 이미지 객체를 도무송 스티커처럼 ‘도려내는’ 감각이 번역된 모습으로서 회화면에 남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제, ‘도무송’의 어원이 유압 절단기 제조사 톰슨(Thompson)이란 사실을 상기해보세요.

구체적 공간의 환영성에 포치되지 않고, 플랫한 붓질과 최소한의 개별적 음영만을 가지고서 임의 배치된, 캔버스에 ‘발린’ 도무송들. 얇게 말라붙은 채색으로 캔버스 표면의 질감이 화면상의 노이즈처럼 지글거리면서 미세하게 진동시키는 건, 단호하고도 다감한 손길로 마름질된 윤곽선입니다. ‘도려내기’의 논리는 또 여러모로 변주되는데, 채희씬 캔버스를 절단해 ‘마테’를 연상시키는 긴 화면을 병치시키는가 하면, 그나마 화훼화적이거나 정물화적인 캔버스의 경우엔 잘려나온 사진처럼 화면 바깥을 적극적으로 암시하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액체 도무송》은 마치 이야기를 잃고 신체 안에서 죽어가는 기억의 이케바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엔 그 재료가 된 ‘내 기억’이라는 특권의식은 없습니다. 우리는 물론 채희씨조차도 붓 끝 실감의 이편과 저편 어디에서 도무송이 만들어지는가를 엄밀하겐 단정할 수 없고, 채희씨의 다이어리란 그렇게 내 몸이 끊어낸 세계, 도무송 ‘바깥’에 역설적인 질량을 부여하려는 수행입니다. 마지막 한숨처럼 드립핑된 물감은, 도무송들이 흘린 피처럼 보이기도, 미처 도무송이 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애도의 표식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글: 김세인


전시 기간

2021년 1월 2일 - 12일


기획

김세인, 신채희


참여 작가

신채희


포스터 디자인

이우정